온 생을 다해 되찾고 싶었던, 가장 사랑했던 존재를 영원히 떠내보냈다. 그렇다면 의미를 잃어버린 삶은 어디로 가는가? 유우키 카즈하는 그것이 궁금했다. 처음에는 그저 고통에 매몰되었다. 그 다음엔 분노로 이어졌다. 날카로운 절망은 둔탁해지기 전, 마지막 섬광을 뿜어내고 스러졌다. 모든 것을 베어 없앴다. 그것으로 되었던가.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휴직을 신청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나마도 유능한 형사를 오래 쉬게 할 수 없다며 고작 한 달을 얻었을 뿐이지만, 그에게는 상실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보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내팽개친 그는 그대로 술독에 빠졌다. 마시고, 또 마시며 하루토를 추모했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그에게 있어 하루토는 삶의 모든 것이었다.
등에 지고 있던 것을 칼로 도려내버리자 피가 흥건히 흘러내려 온 몸을 적셨다. 생기가 빠져나가는 몸은 바닥에 늘어지고 의식은 공중으로 부유했다. 중간중간 술기운에 친분이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주정을 좀 하긴 했지만, 그것이 딱히 제대로 기억에 남진 않았다. 귀신같이 이번 일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연락했던 것만이 희미하게 기억 속에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 내 동생은 돌아오지 못했다. 고통 속에 살다 재가 되어 영원히 사라졌다.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은 나였다. 내가 했다. 내가...내가 그랬어.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지나친 비극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력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철저한 복수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래주었을 뿐, 죄책감까지 가져가지는 못했다.
눈물조차 나지 않는 공허함만이 가슴 속에 가득했다. 이제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지. 하루토를 구하지 못한 주제에 아직도 살고 싶어하는 것이 스스로 우스웠다. 하지만 하루토를 따라가는 것은 그 아이가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내 동생. 너는 내가 행복하길 바라겠지. 하지만 그건 좀 힘들 것 같아. 하루토, 나는-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않고 누워만 있다가 그나마 정신을 차렸다. 며칠이 지났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체크한 달력은 2주 정도가 지나 있을 뿐이었다. 싸게 먹혔군, 생각하며 엉망이 된 집이며 자신을 돌아보자니 그간 길게 자란 손톱이 거슬렸다. 간단히 청소를 하고 손끝을 깔끔하게 다듬고 나니 창 밖으로 해가 저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석양이 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빛이 잦아들고 어둠이 방 안을 덮기 시작할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을 켜야겠지? 이성적인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일어나서 더듬더듬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누르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누구지. 집주인 할매인가. 월세라면 제대로 냈는데. 생각하며 문을 여는 순간, 그는 아주 의외의 얼굴과 마주쳤다.
"...하나자와 씨?"
"카즈하 씨. 안녕하세요."
대관절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지? 라고 생각하며 기억을 더듬어보자니 분명 전에 같이 퇴근하며 우리 한 동네에 사네요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 때 주소를 알려 주었던가? 그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지금 하나자와 아이가 불시에 자신의 집에 방문했다는 것이다.
"에?"
"전화를 받지 않으시기에 들렀어요."
그러고 보니 최근 며칠간 간간히 자신의 생존 체크를 해주었었지. 전화를 받을 때마다 괜찮은 척 했다고 생각했는데 집까지 찾아온 것을 보아하니 실패했던 모양이었다. 청소하고 씻고 난 직후라 다행이다 생각하며 안으로 사람을 들이고 나면 휑덩그렁한 집 안 풍경이 어딘지 모르게 머쓱했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방문객을 의자에 앉히고 물이라도 한 잔 주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잠시 안절부절하다가 내놓은 소리라고는 평소와 다름없는- 이라고 생각은 했으나,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아 어물거리며 맞은편의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불편한 침묵이 흐르다 먼저 입을 땐 것은 하나자와 아이였다.
"저녁 식사는 하셨나요?"
"어.... 아직? 일걸. 왜요, 같이 저녁 먹어 주게요?"
원래라면 느물거리며 윙크라도 날렸을 것을 어정쩡하게 대답했다는 기분에 이마라도 치고 싶던 찰나, 하나자와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가는 건가? 하고 멍하니 있자니 눈 앞으로 손이 내밀어졌다.
"같이 먹으러 가죠."
"오. 진짜로?"
그러니까 하나자와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 진짜로 살아있나 체크하고 안 죽었으면 밥이나 먹이기 위해 온 거라고? 카즈하는 묘한 기분으로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맞잡은 손은 따뜻해서, 공허했던 마음의 어딘가가 조금 메꿔지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손이라니.
"하나자와 씨도 겉보기와는 다르게 참 상냥한 사람이라니까."
"제 겉보기가 어떻다구요."
"바늘 하나도 안 들어가는 냉정, 터프한 1과 엘리트지."
"그걸 그렇게 말해요?"
"게다가 속마음은 폐인이 된 동료를 챙기러 집까지 와서 손도 잡아주는 다정한 사람이라는 게 잘 안 믿겨서."
칭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말을 어벙하게 뱉고 나면 저쪽이 냅다 손을 놔버린다. 카즈하는 정말 오랜만에 웃음을 터트렸다. 먼저 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상대가 어쩐지 부끄러워 하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일까. 그 뒤를 쭐래쭐래 쫒아 나가 몇 걸음 앞의 하나자와를 따라잡는 것은 쉬웠다.
"지금 부끄러운 거예요, 쪽팔린 거예요?"
"조용히 하세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두고 가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자와답달까. 이 사람의 책임감이 자신에게까지 닿아 있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책임감. 그래, 그것이겠지. 카즈하는 이 사람이 유독 자신에게 신경쓰는 이유가 거기서 온 것 같았다. 그에 이어 자신도 모르게 키사라기 산에서 하나자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를 원망해라.' 라는. 하지만 그 일이 하나자와의 탓일 리가 없다. 이 사람 역시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분주했을 뿐이고, 운이 나쁘게 자신의 사적인 일에 말려들어- 까지 생각하자 속이 안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을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샌가 걸음을 멈추고 멍해져 있던 걸까.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들렸다. 아차 싶은 마음에 고개를 들면 걱정스러운 표정의 하나자와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어, 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고는 손을 내젓는다.
"아, 미안. 잠시 딴 생각 좀 하느라."
"...안색이 좋지 않네요."
"안 좋은 생각 해서 그래. 이제 괜찮아요.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하나자와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제안했다.
"밥 대신 술이라도 같이 마셔 줄까요?"
"당신이랑?"
"싫습니까."
"그럴리가. 그런데 내 주정 감당 가능 하겠어요? 내가 술 마시고 당신한테 전화한게 몇 번인데."
하나자와가 어깨를 으쓱이곤 가자는 듯이 손짓했다. 그 다음은 어땠더라. 술을 진탕 마시고, 울고불고 하고, 대성통곡하는 자신을 하나자와가 챙겨서 집까지 배달해준 것까지...
고스란히 전부 다 기억이 날 예정인 것이 문제였다.
***
카즈하는 집 현관에 드러누운 채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죽을까? 아니, 죽겠다. 쪽팔려서!
술을 마시자는 말에 좋다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취하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 뭐가 좋단 말이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차디찬 타일 바닥에서 일어서면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료에게 신나게 주정을 부린 것이 떠올라 숙취보다 그게 더 골치가 아팠다.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말이지, 아니, 우리가 편한 사이기는 한가? 그냥...동료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침대도 요도 없는 맨바닥에 쓰러져 잔 탓인지 온 몸이 욱신거렸다. 현관에 널브러진 신발을 보니 하나자와는 자신을 집에만 넣어주고 돌아간 모양이다. 덕분에 더 이상의 추태를 보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주섬주섬 일어나려는데 카즈하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하나자와인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며 확인하면 아니나다를까, 그 사람이 맞았다. 큼, 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전화를 받는다.
"유우키입니다."
"일어났어요?"
"예에. 방금 전에요. 어젯밤엔 죄송했습니다."
"괜찮아요. 뭐 좀 먹었어요?"
"아니, 아직..."
"그럼 좀 기다려요."
엥? 이라고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어벙하게 남겨진 상태로 있다가 설마, 싶어서 후다닥 집안 꼴과 자신의 꼬라지를 수습하고 있자면 머지않아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것은 비닐봉투를 든 하나자와다. 그건 뭐냐는 듯이 바라보자니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냄비랑 식기정도는 있죠?"
"그렇긴한데요?"
"해장할 걸 좀 만들어왔어요."
그러곤 비어 있는 주방으로 가서 알아서 뭔가를 꺼내 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카즈하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다가 곧 주방으로 가서 하나자와를 기웃거렸다. 와, 수제 요리? 나 몇 년 만에 먹어봐요.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보면 곧 전골 요리 하나가 뚝딱 만들어져 나왔다.
후다닥 수저와 그릇을 놓고 식탁에 마주앉아 잘 먹겠습니다, 까지 하고 나면 카즈하는 기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누군가가 해주는 가정식이라니,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하루토가 실종되고 난 후 카즈하의 가정은 거의 붕괴되었고 부모님과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 받은 것도 몇 년 전이었기 때문에 카즈하는, 그러니까... 이런 식의 돌봄 비슷한 것을 받아본 기억이 너무 오래 전이었다는 말이다.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눈 앞의 하나자와를 본다. 이 사람이 내게 느끼는 것은 단지 책임감 뿐인가? 내가 이 사람에게 느끼는 것은 단지 동료애 뿐인가? 우리 사이에 있는 것은 무엇이지? 잠시 잡생각으로 빠지다가도 코 끝을 간질이는 먹음직스러운 향기에 의식이 현실로 이끌려져 내려온다.
"...맛있다."
"다행이네요."
"하나자와 씨, 장녀예요? 요리 잘하는 걸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맞아요. 그치만 그러는 카즈하 씨도 장녀 아닌가요."
"난 장녀라기보단 나이 좀 더 먹은 놈팽이인 거고."
키득거리며 이어진 농담에 하나자와의 한 쪽 눈썹이 들렸다가 내려갔다. 아, 맘에 안 들어하는군. 하지만 전 그런 놈인걸. 그냥 웃으며 전골을 후후 불어가며 먹고 있자니 조금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위험한데. 이거 빈틈이다.
카즈하는 자신의 상태를 자각했다. 지금 벽이 허물어진 틈새로 무엇이 밀려 들어오고 있는지 알아챘다. 15년간 자신을 꽉 채우고 있던 압박이 빠져나간 빈 공간에 새로운 감정이 들어차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순간 자신이 뭘 먹고 있는지 잊어버렸다.
묻고 싶었다. 왜 이렇게 내게 잘해주냐고. 미친 사람한테 잘해주는 거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냐고. 당신 그냥 보인 친절에 이 나약한 영혼이 맥없이 물들어버리면 그 이후의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냐고.
떠오른 상념에 잠시 멈추었던 손을 놀려 전골의 버섯을 입에 넣는다. 향긋한 향기가 입 안을 가득 채우면 정신이 들면서 이것이야말로 생의 맛이라는 기분을 느꼈다.
17세의 여름에서 멈추어 있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복구가 아닌 상실로 말미암은 것이었지만, 또한 회복의 신호이기도 했다. 전부 스러지고 난 뒤에 새로 쌓은 성의 골조가 얼마나 튼튼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저벅저벅 걸어들어온 하나자와가 주춧돌을 놓아 주었으니 이제 무엇이든 새로 올릴 수 있을 터였다.
"...고마워요."
"전골이 입에 맞으시는 모양이네요."
"그거 말고도, 많이."
턱을 괴고 나른히 웃는 얼굴이 하나자와를 향하면 똑바른 시선이 마주닿아온다. 피하지도, 흘리지도 않는 단단한 눈빛. 자신은 가지지 못한 것이었기에 경외감마저 드는 그 눈빛에 카즈하는 가슴이 약간 울렁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 설레임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어도 기꺼웠다. 얼마든지 침범해 들어온다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이런 다정함이 당신의 방식이라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는가.
어느새 싹 비워진 냄비를 씻어 두고 나면 카즈하가 하나자와에게 먼저 산책을 제안한다. 그냥 가면 섭섭하니 커피 사겠다는 말을 건네며 카즈하는 생각했다. 하나자와에 대한 일은 어쩌면 내가 가진 기회들 중 가장 비겁하면서도 치밀한 계획이 될 지도 모르겠다고.